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,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무심코 넘기곤 합니다. 그중 하나가 바로 ‘귀지’입니다. 세수할 때, 머리 감을 때, 혹은 문득 귀가 간지러워 손이 갈 때쯤에서야 우리는 그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되죠.
하지만 이 작은 귀지가, 때로는 몸속 상태를 알려주는 창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, 알고 계셨나요?
귀지는 단순히 귀를 더럽히는 분비물이 아닙니다. 우리 몸이 외부 자극과 세균으로부터 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막이기도 하지요. 그런데 이 귀지가 색이 변하거나, 끈적이거나, 냄새가 날 때는 그저 ‘청소 안 해서 그렇겠지’ 하고 넘기기엔 아쉬운, 건강에 관한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.
귀지는 왜 생길까?
귀지는 의학적으로 이루마(earwax) 또는 이도지(耳道脂)라고 합니다. 우리 귀의 외이도에 있는 기름샘과 땀샘에서 나오는 분비물들이 피부의 각질, 먼지, 세균과 섞여 형성되죠.
일종의 ‘귀 청소를 위한 셀프 방어 시스템’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. 건강한 귀지는 살짝 노르스름하거나, 말라 있는 형태가 많고, 불쾌한 냄새는 거의 없습니다.
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귀지가 뻑뻑해지고, 색이 진해지며, 냄새가 난다거나 묽게 흐른다거나 하면 그건 몸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변화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.
귀지의 상태로 의심할 수 있는 건강 문제
1. 귀염증(외이도염)의 전조
귀지가 진득하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면, 외이도에 염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. 특히 수영 후 물이 자주 들어가거나, 면봉으로 깊숙이 귀를 자주 건드리는 분들에게 흔하죠.
- 증상: 귀의 통증, 가려움, 분비물 증가, 냄새나는 귀지
- 조치: 귀를 과도하게 건드리지 말고, 증상이 지속되면 이비인후과 방문 권장
2. 피지 분비 이상 또는 호르몬 변화
갑자기 귀지가 기름지게 많아지거나 끈적이는 경우, 피지선의 과다한 활동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.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, 수면이 불규칙할 때 자주 나타나기도 해요. 여성의 경우, 생리 전후나 갱년기에도 귀지 상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.
3. 간 기능 저하
귀지는 우리 몸의 독소 배출 시스템과도 연결됩니다. 간이 피로하거나 기능이 떨어질 경우, 귀지에 검은빛, 진한 황색, 탁한 기름성이 보일 수 있습니다. 특히 피부에 유분이 많아지고, 쉽게 피로를 느낀다면 귀지의 변화와 함께 간 상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일 수 있습니다.
4. 당 조절 이상, 당뇨병 초기 가능성
혈당이 높아지면 체내의 여러 점막 분비물도 점도가 변할 수 있습니다. 귀지가 갑자기 끈적이고 떡지며, 악취가 심해졌다면 혈당과 관련된 문제를 의심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.
귀지 색으로 보는 건강 신호
귀지 색상 | 의심 가능한 원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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옅은 노란색 | 정상, 건강한 귀지 |
진한 갈색 또는 검은색 | 오래된 귀지, 간 기능 이상, 산화된 지질 |
묽고 반투명한 귀지 | 염증 또는 습한 외이도 |
흰색 가루 형태 | 피부 건조, 아토피 체질 |
회색 또는 초록빛 | 박테리아 감염 가능성, 염증 반응 |
귀 건강을 위한 생활 팁
- 면봉 사용 줄이기: 깊숙한 귀지는 자연스럽게 배출되니 무리하게 깊숙이 파지 않아도 됩니다.
- 샤워 후 귀 바깥만 닦기: 물기를 제거할 때는 귀 안까지 넣지 말고, 타월로 겉면만 닦아주세요.
- 귓속이 간지럽더라도 참기: 긁을수록 더 가렵고 염증이 생기기 쉽습니다. 증상이 심하면 병원 진료를 받으세요.
- 몸 전체 컨디션 함께 보기: 귀지 변화가 단독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, 함께 피로, 트러블, 수면장애 등이 있다면 몸 전체의 밸런스를 점검해 보세요.
작고 조용한 귀지만 속으론 여러 말을 하고 있습니다.
귀는 말이 없습니다. 소리를 들어주고,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항상 바쁘게 몸의 상태를 받아들이고, 조용히 신호를 내보냅니다.
귀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. 그저 귀 속 청소의 부산물이라 여겼던 그것이, 우리 몸의 작은 변화들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‘거울’ 일지도 모릅니다.
다음에 귀지를 닦을 때,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세요. 그 속엔 ‘괜찮은지 한 번만 물어봐줘’라는 몸의 조용한 부탁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.
우리의 몸은 늘, 다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. 귀 기울여주는 마음이 결국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.